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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6년째가 되는 내 조그만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 NEX-7
글쓴이 : 하록선장 등록일 : 2017-11-25 01:58:59 조회수 : 17,847 추천수 : 31
곧 6년째가 되는 내 조그만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 NEX-7








2017년 3월, 아마도 저는 그 달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2년 6개월동안 잘 살던 집에서 부당하게 쫒겨나기 직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우리각시와 작은 전시를 열었거든요.
원래 있던 짐들과 가구들을 다 빼고 벽에 그 흔적을 남겨놓았습니다.
옛 WG 멤버들 사진을 모아 소금에 묻었습니다.
중요했지만 이젠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서류들을 다 분쇄했습니다.


그렇게 정든 집을 떠나, 또 다른 소중한 집을 얻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 때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갑자기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문득 저의 오래된 카메라가 꼭 그 집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라는 절대자는 출시 당시 최고의 미러리스였던 이 카메라를 초라하게 만들어놓고는, 제게 그를 떠날 것을 강요합니다.
2013년 초봄부터 이어진 우리의 인연을, 그 절대자가 끊어내려 합니다.


이제는 여기저기 번들거리고 뒤쪽 가죽도 다 떨어진 채 가끔 오작동을 내는 나의 낡은 카메라.
녀석은 여전히 2400만화소라는 꽤 괜찮은 스펙과 유려한 디자인을 갖고 있습니다만, 엄청나게 흔들리는 동영상 결과물 때문에 저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5축손떨방에 디자인도 아름다운 pen-F, 혹은 20만원이면 구할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e-p5...
불행히도 저는 그저 돈없는 유학생일 뿐이라, 남들처럼 쉽게 기변할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지요.










가끔은 수동렌즈로, 또 가끔은 자동렌즈로. 저는 몽글몽글한 보케가 참 좋습니다.


그래서일까요... 2002년 이후로 지금까지 꽤 많은 수동렌즈들을 써봤습니다.
넥스-7 이 녀석에겐 타쿠마 50mm f1.4, 헬리오스 58mm f2.0, 코시논 50mm f1.8, 그리고 주피터-8 50mm f2.0를 물려봤네요.
지금 남아있는 건 주피터-8 뿐이지만요. 아무래도 미러리스의 경박단소의 미덕을 해치지 않는 유일한 m39 렌즈인 까닭이겠지요.


비록 최소초점거리가 무려 1미터나 될 뿐만 아니라 최대개방에서 엄청나게 소프트하지만, 쉽게 못버리겠더라구요.
예전에 장터에도 내놓아봤지만 아무도 둘러보지 않더군요.


지금은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공부하냐구요?
네, 전 독일에서 미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카셀,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이 작은 도시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합니다. 벌써 내년이면 졸업이네요.
한국에선 조각을 전공하고 대학졸업 후엔 사진작가였던 제가, 여기서는 코스튬을 만들어 영상작업을 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멋지다고 하십니다.


뭐, 저야 끌리는 대로 살 뿐입니다. 스스로도 제 삶이 그리 순탄해 보이진 않네요. ㅎㅎㅎ






















올해는 원없이 전시를 보며 돌아다녔습니다.
2017년엔 스위스 바젤아트페어, 독일 카셀도큐멘타, 독일 뮌스터조각프로젝트,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겹치기도 쉽진 않지요. 베니스비엔날레는 2년에 한번, 카셀도큐멘타는 5년 에 한번,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무려10년에 한번 열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 해 베니스에선 비엔날레 기간에 맞추어 데미안 허스트의 개인전도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이 낡은 카메라는 개인작업이나 기타 전시를 기록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진 않습니다.
훨씬 더 많은 비율로 녀석의 센서에 맺히는 것은 주변 풍경, 그리고 사람들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 풍경보단 인물을 더 담아온 것 같습니다.
제 눈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눈빛이나 몸짓, 혹은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의 감정을 카메라에 오롯이 담아내는 순간이야말로,
그 어떤 대화만큼이나 진솔한 시간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여행을 가서도 장대한 풍경을 광각으로 담는 것보다 그 곳의 사람들을 더 많이 찍어온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풍경에 큰 관심이 없다보니 넓은 화각의 렌즈도 거의 산 적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이런 현상도 더 심해지는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동영상 촬영 때문에 16-50 번들렌즈가 땡기더군요.


만약 제가 이 렌즈를 산다면, 시그마 19mm f2.8 은 장터행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시간이 나면 가끔씩, 집에 있는 소중하거나 오래된 물건을 담습니다.
집 안 작은 불빛,
각시의 곰돌이 인형,
저의 낡은 노트북 X60,
며칠 전 데려온 작은 수채화고무나무,
친구들과 만들어먹은 스프링롤,


그리고 저의 아주아주 오래된 모자.


여기저기 뜯어지고 헤져서 손바느질로 꼬매기도 여러 번 했지만 아직 버릴 마음은 없습니다.


















오랜 고민 끝의 저의 결론입니다.


저는 낡은 친구 넥스 7을 버리는 대신에 싸구려 짐벌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여행가방이 더욱 무거워는 지겠지만, 아직도 팔팔한 녀석을 버리기엔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고생의 순간들이 훨씬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더 시간이 흘러 녀석이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때 내려놓아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곧 6년째가 되는 내 조그만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 NEX-7 ] 편 끝



추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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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소윤아빠_NX20 추천
잘보았습니다. 저는 오래된 nx20 남기고 a6000으로 넘어왔는데 예전 카메라의 사진들이 더 정이가고 좋네요.
카메라는 도구일뿐 찍는 사람이 중요하다는걸 새삼 느껴봅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라는 말 공감합니다.
2017-11-25 10:02 신고

박정우_눈먼냥이 추천
캬... 역시 장비는 핑계일뿐이네요 ㅠ_ㅠ 쓰는게 중요하지 라는걸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사용기? 에세이? 그 둘다의 느낌이네요.
2017-11-25 10:39 신고

아타 추천
카셀이면 나름 대도시죠 ㅎㅎ
저는 괴팅겐에 있었습니다. 
그때가 그립네요. 
멋진 삶을 사시는듯 하여 부럽습니다
2017-11-26 22:55 신고

Extreme Nuno 추천
스르륵인지 팝코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리뷰를 읽다보니 전에 작성하셨던 글도 기억나네요
각을 강조 하셨던 기억이^^
여전히 에세이 같은 사용기가 느낌이 좋습니다.
2017-11-28 00:09 신고

네모세상 추천
소중한 사용기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진과 일상... 그리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NEX-7은 이미 한 가족이었음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래서 떠나보내기도 아쉬우실 듯. 저도 추억이 담긴 카메라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거든요.
새로만나게 될 짐벌이 새생명을 불어넣을 것 같네요.^^
2017-11-28 12:02 신고

Tooces 추천
제가 가진 장비를 되돌아 보게 만든 훌륭한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2017-11-28 15:02 신고

참깨바 추천
한작품한작품 보면서 가슴속으로 몬가 오네요 사소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모 그런거~~ 또한 낡은 장비가 뿜어내는 멋진 사진들 ~~역시 장비는 거들뿐 이란걸 다시 한번 느낌니다~ 저는 프로란 의미가 돈을 많이 벌기 보단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그것을 해석하거나 표현하는자로 생각 합니다~~ 좋은 작품들 감상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7-11-29 13:33 신고

사과파이 추천
멋진 사진과 글 잘 봤습니다.
2017-12-13 17:58 신고

바랑발자국 추천
너무 너무 잘 보고 갑니다 감성 충만 합니다^^
2017-12-13 21:39 신고

공기좋다 추천
와 진짜 장비탓 하면서 신제품 살게 아니라 제가 문제였네요....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2017-12-14 14:17 신고

대롱타이거 추천
저도 처음 샀던 a6000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글을 읽으면서 역시 초심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2017-12-14 23:04 신고

kkon 추천
카셀에 다음주에 가는데 괜히 반갑네요.
2017-12-16 23:58 신고

kkon 추천
처남이 성악가에요 
연말에 공연한다해서 집사람이랑 애기랑 같이 가네요 
정말 시간되면 차라도 한잔하면 좋겠네요~^^
2017-12-18 16:31 신고

본드머리 추천
저도 몇년간 국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보니 먼 곳에서 고생도 많으셨겠지만 정말 멋진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진에서도 열정과 감성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한장 한장 참 멋진 사진들입니다.
올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다가오는 2018년 원하시는 것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2017-12-29 17:27 신고

적멸 추천
예전에 slr 에서 사진 자주 봤었는데 (누드에 대한 독특한 시도들, 참 좋아서 님 사진 볼 때마다 늘 추천드렸지요)
독일에 가계셨군요^^
카메라와 함께 근황을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람 속 원시성과 변화무쌍함에 대한 탐구 여전하시네요.
사진의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는 사람이란 말씀에 공감합니다.
아마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참 여러모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대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종종 사진이든 작품 근황이든 이곳에서 볼 수 있음 좋겠네요.
지구 어디에 계시든, 새해에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2018-01-09 04:30 신고

BENJUN 추천
사진들 정말 너무 잘봤습니다 ㅠㅠ 사진기를 얼마나 좋은 상태로 최신의 상태로 유지하느냐 보다 얼마나 본인의 눈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느냐가 중요한지 정말 느껴지고 귀찮은 저를 반성하게 되는 글과 사진들이었습니다 ㅠ 앞으로도 좋은 사진 많이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ㅎ
2018-01-15 03:35 신고

추억을담다 추천
제목보고 그냥 들어왔는데 범상한 사진들에 글까지 다 읽었습니다. 바디 탓만 하는 나를 되돌아 보고 부끄러웠습니다.
사용기 잘 보았고 지름신이 들때마다 다시 와서 보겠습니다.
감동으로 사진들보다 작은 사진기로 찍고 계시는 셀카 마지막 사진을 보니 웃음이 머금내요. 건강하시고 유학생활 잘 하십시오.
2018-01-15 13:08 신고

까만돌 추천
멋진 사진 잘 보았습니다.

고양이사진과 알미늄 테이프로 ......사진이 강하게 뇌리에 남을 것 같네요.
2018-01-30 09:12 신고

내일바라기 추천
좋은 사진은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고 갑니다. 좋은 글과 사진들 잘 봤습니다 ^^
2018-02-22 12:48 신고

citizen 추천
감동적입니다

울컥하는 감동적인 사진이 있었네요.

잘 보고 잘 읽었고 깊이 공감하며 응원을 드립니다.
2018-03-07 18:13 신고

Moonlit 추천
하록선장님 nex-7에 대한 글은 전에도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여기서도 보니 반갑네요
글과 사진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2018-04-12 01:50 신고

미틴죠 추천
앗... 코스튬 작품 사진은 본 적이 있었는데... 소미클에서 였는지... 별다른 설명이 없어 궁금했었는데 오늘 이해했네요.
진짜 사진들과 글... 숨 죽이고 봤어요. 사진 전시회 때 작가들이 사진 배치와 순서로 몇 날 몇 일을 고민한다던데... 이유를 알겠네요.
정말 멋진 에세이와 멋진 사진들... 많이 배웁니다.
카셀 생활은 어떠세요? 저는 프랑크푸어트에 삽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선장님 작품 감상해봤으면 싶네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2018-04-16 08:54 신고

+또바기+ 추천
사진기를 탓했던 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느좋은 사진과 글이였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8-04-19 12:24 신고

henri78 추천
와.. 글과 사진이 너무 좋네요! 애정이 듬뿍 느껴집니다. :)
2018-04-23 11:54 신고

나는여우[Lv7] 추천
이런 멋진 생각을 하게 해 주는 NEX-7을 아직도 갖고 있다는 뿌듯함이 살아 납니다.
그런데 제 NEX-7은 저런 사진 퀄리티가 나오지 않던데,,, 아마도 실력이 문제겠죠?
2018-05-28 00:04 신고

누군가로부터 추천
이걸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네요. 곧 lx100m2를 들이려고 하는데요. 원래 rx10 첫번째 시리즈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건 망원은 좋지만 1인치라 부족한 느낌이 많았어요. 그래서 마포는 되어야겠다 싶기도 했고 쓰다가 마음에 안 들면 진짜 a7에 2875로 갈까 싶었는데 그게 참 어리석은 생각 같네요. 그냥 제가 잘 찍으면 되는군요. 가벼운 lx100m2를 써야겠네요.
2019-01-26 14:15 신고

신선생님 추천
하록선장님의 이 좋은 글과 사진을 이제야 봤네요..^^
너무 멋진 작품들과 인생이야기에 넥7의 감성까지 멋지십니다.
2019-03-10 02:16 신고

마그누센 추천
사진 너무 잘 봤습니다 역시 장비보다도 중요한건 누가 그 장비를 잡냐네요
2020-08-05 23:47 신고

빨간귤 추천
아 사진 넘 좋습니다. 독일 카셀...1년에 한번씩 성에서 하는 분수쇼! 가 유명하다는 그 곳 아닌가요. 역시 미술 하시는 분 사진은 감각이 남다르세요 ^^
2020-08-07 22: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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